제주 4.3 사건이란 무장봉기를 일으킨 남로당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제주도민들이 사회주의자로 몰려 무려 7년이 넘게 3만 명 이상 잔혹하게 희생당한 사건입니다. 같은 국민을 학살했던 가장 비극적인 대한민국의 역사로 수십 년 동안 감춰져 왔던 제주 4.3의 사건 배경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목차
1. 제주 4.3 사건 배경
- 사건의 시작
- 응원 경찰, 친일파 출신의 경찰들
2. 제주 4.3 사건 전개
- 제주 4.3 사건 이후
3. 대한민국의 비극적인 역사
제주 4.3 사건 배경
제주도에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무력 충돌 사건을 시작으로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민들까지도 사회주의자로 몰아 대량 학살한 사건으로 공식적으로는 사망자가 약 3만 명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수를 알 수 없을 정도도 수많은 목숨이 희생된 사건입니다.
사건의 시작
광복 이후 1947년 3월 1일 제주도 관덕정에서 3.1 운동 28주기 기념행사가 열립니다. 그때 경찰이 말을 타고 지나가다가 6살 정도의 어린아이를 치고 그냥 지나갔고 다친 아이를 살피지 않는 경찰을 보고 화가 난 군중들이 그를 잡으려 소리를 지르고 돌을 던지며 쫓아가게 됩니다.
멀리서 그것을 본 다른 경찰들이 폭동으로 오인하여 총을 쏘게 되고 6명의 제주도민이 총에 맞아 죽게 됩니다. 하지만 죽은 이들은 돌을 던진 사람이 아닌 근처에서 구경하던 무고한 시민들이었으며 6명의 희생자 중 15살 학생과 젖먹이 아이, 21살 엄마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로 인해 온 제주도민이 분노하게 되었고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으나 경찰은 오히려 제주도민들을 향해 기관총으로 위협하며 겁을 주게 됩니다. 이를 보고 많은 제주도민들이 들끓고 일어나게 됩니다.
1947년 3월 10일 기업인, 자영업자, 학교, 공무원, 제주경찰 등 제주도민 95%가 참여한 대규모 총파업이 시작되었고 이를 알게 된 중앙정부에서는 그들을 사상이 불온한 사회주의자로 몰아 낙인찍습니다.
이후 수많은 친일파 출신인 '응원 경찰'과 친미와 반공을 외치는 대표적인 반공우익 집단인 '서북청년회'가 제주로 와서 파업한 제주 경찰 자리를 채우게 됩니다. 이들은 좌익세력을 색출한다는 명목하에 제주도민을 가두고 고문하는 과정을 1년 동안 계속합니다.
응원경찰, 친일파 출신의 경찰들
당시 경찰 중 상당수는 친일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해방 후 당시 미군정은 친일파 세력을 몰아내기는커녕 친일파 출신 경찰과 공무원을 그대로 유지하였습니다.
1946년 말 전체 경찰 고위 간부 82%가 일제 경찰 출신일 정도였으며 일제강점기 때에 우리 국민에게 횡포를 부리던 사람들이 해방 후에도 횡포를 부리며 살게 된 것입니다.
미군정은 제주를 제주도로 승격시키면서 더 많은 치안 유지 명목과 제주에 있는 경찰을 응원한다는 의미로 '응원경찰'을 보냅니다. 이들 대부분은 친일파 출신의 권위적이고 악랄한 경찰들이었습니다.
제주 4.3 사건의 전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은 탄압 중지와 남한 만의 단독정부 반대, 통일 정부 수립 촉구 등의 외치며 무장봉기를 일으킵니다.
이 무장봉기 사건으로 정부에서는 군대를 투입하려 하였는데 당시 군대 9 연대 김익렬 연대장은 평화적으로 해결을 주장하며 제주 무장대 총책 김달삼과 만나 평화협상을 맺기로 합니다. 하지만 우익청년단원들에 의한 제주읍 오라리 방화사건이 일어나면서 협상은 깨지게 됩니다.
1948년 8월 15일 남한은 단독정부 수립하고 선거를 하지 않은 제주도는 대한민국 정부수립에 반기를 든 빨갱이 폭도섬으로 낙인찍으며 응원경찰, 서북청년단, 군대를 동원해서 대대적인 토벌 명령을 내립니다.
1948년 10월 17일 제주도 초토화 작전 선포됩니다. 이것은 제주 해안선으로부터 5km선을 긋고 그 위쪽에 있는 중산간, 산악지대에 사는 사람은 모두 죽이고 들어간 자도 이유를 불문하고 폭도로 간주해서 죽이라는 작전입니다. 이 초토화 작전동안 제주 4.3 희생자 70~80%에 이르는 사람들이 학살당합니다.
이후 1948년 11월 17일 제주에 계엄령 선포하며 더욱 끔찍한 학살이 자행되며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됩니다. 노인, 어린이 상관없이 무고한 도민들을 밧줄에 묶어 칼로 찔르고 총으로 쏘고, 심지어 3살 난 어린아이 다리를 잡고 바위에 패대기쳐 죽이는 등 잔혹한 학살이었습니다.
1948년 4월 3일부터 시작한 학살은 1954년까지 무려 7년이 넘게 자행되었으며 제주도민 30만 명 중 3만여 명이학살당합니다.
제주 4.3 사건 이후
제주도민들의 아픔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도 장애와 함께 그날의 참상을 잊지 못하며 살아갔고 제주 4.3 사건은 아무도 입에 담을 수 없는 금기가 되었습니다.
제주 4.3 사건이 조금씩 알려지게 된 것은 수많은 세월이 흐른 뒤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에서였습니다. 그때야 이 사건이 공론화가 되었고 2000년 제주 4.3 사건의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 2003년 10.15일 제주 4.3 사건 진상조사 보고서 채택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에 이르러서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그 당시 희생된 희생자와 유가족들, 제주도민들 앞에서 고개 숙여 사과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납니다.(2003.10.31)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대한민국의 비극적인 역사
제주 4.3은 같은 국민이 같은 국민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던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비극적이고 아픈 역사 중 하나입니다.
이제라도 이 비극적인 역사를 바로 알고 희생당한 사람들을 추모하며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이 땅에서 되풀이되지 않게 기억하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제주 4.3 평화재단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또 다른 대한민국의 역사
제주 4.3은 감추어야 할 역사가 아니고 반드시 기억돼야 할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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