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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대하여

6.25 한국전쟁 기간과 휴전

by 드림별 2023. 3. 6.

1950년 일어난 6.25 전쟁은 남한의 자유주의와 북한의 사회주의하는 서로 다른 이념의 차이로 약 3년 1개월 동안 치러진 한국전쟁으로 같은 민족이 전쟁과 휴전의 아픔을 겪은 사건입니다.

 

 

6.25 전쟁이 일어난 배경

1945년 8월 15일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이 항복하게 되면서 35년 동안 일본의 식민지에 있던 대한제국은 마침내 독립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의 승전국들은 한반도는 35년의 식민통치에서 이제 막 벗어난 상태기 때문에 스스로 통치할 힘이 없다고 판단합니다.

 

때문에 38선을 기준으로 남과 북으로 나누어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에 들어서게 되고 향후 5년간 대신해서 통치하자는 신탁통치를 결정합니다. 한반도 내에서는 이제 겨우 독립을 이룩했는데 또다시 타국의 통치에 대한 찬반 운동이 격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두 강대국이 자리 잡고 있던 한반도는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라는 각기 다른 이념의 차이로 서서히 고착화되어 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개개인의 정치이념에 따라 남과 북으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남북의 대립구도가 확고해져 갔습니다.

 

 

남한 지역에서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며 이승만 정권이 탄생하였고 독자적인 정부수립을 준비하던 북한은 김일성을 수상으로 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탄생합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의 공산주의는 빠르게 퍼져나갔고 이러한 소련의 붉은 물결을 막고자 미국의 국무장관 애치슨이 극동방위선 정책을 추진하게 됩니다. 아시아 전역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알류샨 열도, 일본, 오키나와, 필리핀엔 방어선을 그어버리는 이른바 애치슨 라인이 만든 것입니다.

 

한반도, 대만, 인도차이나 반도는 제외되었고 이 에치슨 라인에 포함되지 않은 국가는 미국의 방위에서 제외되어 국제연합의 보호에 의존해야만 했습니다. 이제 남한에 있던 미군은 모두 철수하게 되고 이 소식은 북한 김일성의 귀는 물론 소련의 스탈린의 귀에도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한반도 전체에 붉은 물을 들이기 위한 김일성의 야망이 서서히 드러납니다.

 

당시 양쪽의 국력상황은 한국군은 탱크가 한 대도 없었고 국민 성금으로 캐나다로부터 구입한 항공기 10대가 전부인 반면 북한군은 소련으로부터 탱크 242대, 항공기 211대 각종포 3500개를 확보했기 때문에 김일성은 이 상황에서 공격만 진행하면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하게 됩니다.

 

김일성은 자신감에 차서 3일이면 서울을 점령하고 50일 안에는 남한 전체를 점령하며 한반도를 공산주의로 뒤덮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김일성은 3차례나 소련을 방문하여 스탈린으로부터 남침에 대한 허락과 지원약속을 받았고 추가로 중국의 마오쩌둥으로부터 참전 약속과 모든 전쟁물자의 지원 약속을 받아내는 데 성공합니다. 이렇게 스탈린과 마오쩌둥, 김일성이 치밀하게 계획한 6.25 한국 전쟁이 시작됩니다.

 

6.25-전쟁-피난민
6.25 전쟁 피난민들

 

한국 전쟁의 시작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은 폭풍이라는 작전명 하에 38선을 넘어 남한 침공을 개시했습니다. 소련의 간접적인 지원을 받은 북한군은 전차와 전투기를 앞세워 서울을 향해 빠른 속도로 진격하기 시작했고 아무것도 없었던 남한 국군은 북한군의 기습 공격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전쟁 발생 3일 만인 6월 28일 북한의 빠른 침투에 남한은 대응도 제대로 못하고 수도 서울을 점령당하고 맙니다. 이대 북한의 전차가 서울 시내까지 들어서자 국군은 북한이 한강 이남으로 진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한강대교를 폭파시키는 결정을 내립니다. 다리 폭파 소식을 전해 들은 한국 병력은 중장비는 물론 소총까지 모두 버리고 후퇴를 해야 했습니다.

 

이승만은 이미 새벽에 서울을 빠져나가 대전으로 피난했으며 한강이북은 북한군에게 점령당했습니다. 다리가 끊어지는 바람에 서울 방어에 참가했던 국군의 퇴로가 막혀버렸고 다리를 건너지 못한 피난민들의 발이 묶이고 말았습니다.

 

이날 서울시내에 숨은 국군장병, 경찰, 공무원, 반공인사 검거작전이 실시되었는데 체포된 한국군 장교는 무조선 현장에서 즉결처형 되었고 나머지는 인민재판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했습니다.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한 직후 이들은 서울대병원에 난입하여 남한 국군부상자, 중환자들을 상대로 대규모 학살을 벌입니다. 그들은 한국군 응징이라는 미명하게 학살을 자행했으며 부상당한 군인과 일반인 구분 없이 잔인하게 학살합니다.

 

서울시내는 이제 북한군으로 가득 찼고 급하게라도 김홍일 장군이 한강 이남으로 철수한 부대들을 긁어모아 부대를 급조해 북한군과 대치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북한군의 진격을 약 7일 정도 지연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6.25 전쟁 소식을 접한 유엔 안보리에서는 즉각적으로 이 문제를 논의합니다. 북한의 침략이 확인되자마자 유엔은 신속하게 대응조치를 취하였고 미군을 시작으로 연합군의 참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사태를 중시한 트루먼 대통령은 미 해공군과 지상군의 한국 출동을 명령함과 동시에 한국 전 해안의 해상 봉쇄를 명합니다. 여기에 더글러스 맥아더를 총사령관으로 하는 21개국의 유엔군이 조직되며 이제 한국의 국군 지휘권을 미군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전쟁이 시작된 지 6일째 되는 날 맥아더의 명령하에 미군 최초의 참전부대인 스미스 특수임무부대가 부산에 상륙하여 경기도까지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북한군을 한강을 넘어 빠르게 내려오기 시작했고 양측은 오산 죽미령에서 첫 교전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북한의 거침없는 공격에 스미스 분태는 무참하게 패배했고 미군과 국군에게 엄청난 충격과 실망을 안겨주게 됩니다. 

 

북한군을 대전을 넘어서 침공을 계속하였습니다. 유엔의 지원이 결정된 후 투입까지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국군과 일부 미군을 계속 후퇴를 거듭해 대구와 경상남도 일부 지역을 제외한 전 국토가 북한의 수중에 들어가게 됩니다. 북한의 공세에 밀린 대한민국 정부는 부산으로 이전하였고 전국의 피난민들 또한 부산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이 당시 전선의 상황이 급박하고 국군의 병력소모가 상당했기 때문에 일반인은 물론 학교에서 공부하던 학생들도 급하게 나와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약 27만 명의 어린 학도병이 모집돼 총을 쏘는 요령만 습득한 뒤 곧바로 전선으로 투입되었습니다.  

 

그리고 1950년 9월 15일 지금까지 낙동강 방어선에서 지원군이 오기가지 전선을 막아줬다면 이제 한반도에 도착한 맥아더와 UN군이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한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합니다.

 

인천상륙작전은 북한군이 거의 점령한 한반도의 허리 부분을 강타한다는 계획으로 서해안의 갯벌이라는 장애물이 있지만 이것을 성공한다면 북한군의 퇴로와 보급선을 차단하며 전황을 뒤바꿀 수 있었습니다.

 

7만 5천여 명의 병력과 261척의 해군 함정이 인천에 투입되고 같은 날 경북의 장사리에서도 772명의 학도병이 상륙해 양동 기만 작전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국군과 UN군은 2주 만에 서울을 수복하는 데 성공하고 10월이 되자 최초로 38선을 넘어 북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북한의 수도 평양까지 차지하며 마침내 압록강 부근까지 도달하여 중국 국경에 근접했을 때 중국이 북한을 도와 나서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전쟁이 시작됩니다.

 

남한과 북한의 휴전선

한국과 북한의 끈질긴 전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38선 부근에서 양측의 일진일퇴가 거듭되면서 전쟁은 오랫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들은 전쟁이 확대될 것을 우려했고 대부분의 국가가 얼른 이 한국전쟁을 중단하고 휴전을 하자고 주장했습니다.

 

휴전협정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전투가 계속되는 와중에 1953년 3월 소련의 스탈린이 사망하고 한국전쟁이 점점 국제전으로 확대되면서 3차 세계대전의 징후가 보이자 소련은 한국전쟁을 정치적으로 마감한다는 결정을 통보하면서 휴전에 돌입하였습니다.

 

미국은 한국에게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 경제원조, 한국군 증강 등 한국의 안보 태세가 굳건해질 수 있는 조건을 내걸었고 마침내 1953년 7월 27일 한국과 북한 양측 간의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약 3년 1개월 동안 치러진 한국전쟁은 중단되었습니다. 1950년 전쟁이 일어난 이래 휴전상태는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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