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주도하던 강대국이었던 소련은 1991년 붕괴하였으며 그 이유에는 복잡한 정치적, 경제적 문제가 얽혀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을 경제였습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국민들의 불만이 급증했고 이 상황을 타개하고자 내놓은 개혁정책이 어느 쪽의 지지도 받지 못하고 내분을 일으키며 붕괴되기 시작합니다.
소련이 붕괴된 이유와 과정
1912년 러시아 제국에서는 블라디미르 레닌의 손에서 소련 공산당이 탄생했고 레닌의 등장으로 시작된 10월 혁명으로 1922년 12월 30일 소비에트 연방이 탄생합니다. 이렇게 시작된 소련은 스탈린의 집권과 더불어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전례가 없던 대강국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당시 미국은 민주주의, 자본주의 체제를 지지했으며 소련은 공산주의, 사회주의 체제를 지지하며 이러한 두 가지 체제 사이에서 세계를 둘로 나누며 대립하게 됩니다.
소련은 세계를 통틀어서 가장 많은 원유를 생산하는 나라였습니다. 소련 역시도 석유파동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70년대 소련이 전례가 없던 초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바탕에 1차 석유파동가 존재하는 것처럼 80년대 소련의 몰락기에도 2차 석유파동이라는 배경이 있습니다.
1979년에 이란 혁명으로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면서 이란은 이슬람 공화국으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이때 이란의 정권을 잡은 반미 인물 호메이니는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석유수출은 막아섰습니다.
따라서 다른 중동 국가들 역시 원유 생산량을 줄입니다. OPEC은 국제사회에서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됩니다. 두 차례의 석유파동으로 큰 타격을 입은 미국은 더 이상은 당할 수 없다는 생각에 셰일오일을 개발하게 됩니다. 산유국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입지가 낮아지는 일이었으니 셰일오일 기업들을 무너뜨리고 싶어 하게 됩니다.
OPEC은 미국이 원유에 의존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다시 한번 단합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원유의 가격을 셰일오일 가격보다 훨씬 낮추는 방향으로 단합하게 됩니다.
셰일 오일은 제작에 만만치 않은 돈이 들었기 때문에 갈수록 낮아지는 원유의 가격을 맞출 수 없게 되었고 이렇게 OPEC은 미국의 셰일 오일 기업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하지만 산유국들은 원유의 가격이 하락하면서 경제적으로 큰 위기를 맞이합니다. 소련 역시도 다른 산유국과 마찬가지로 원자재 수출에 의존하는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유가의 폭락으로 어려워지게 됩니다. 이때부터 소련의 경제는 위태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국가의 경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것은 제조업입니다. 물론 제조업 없이도 성장할 수는 있지만 이렇게 되면 국제정세나 작은 변화에도 국가경제는 너무 쉽게 흔들립니다. 소련의 주요 산업들을 보면 방산과 우주, 원자재가 전부였습니다. 방산과 우주산업은 그다지 큰돈이 되지는 않는데 비용은 천문학적인 돈이 들었고 우주산업은 사실상 냉전시기 경쟁을 위한 투자였던 것
소련도 최소한의 생산업은 가지고 있었고 심지어 물건의 질도 상당히 좋았지만 공산체제 아래에서 시민들에게 필요한 만큼의 물건만을 생산하도록 제한하였기 때문에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생산량에 제한을 두게 되면 공급은 수요를 절대로 따라갈 수 없었으므로 실제로 붕괴 직전 소련은 생필품을 구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고 합니다.
시민들이 굶어 죽거나 빈곤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구할 수 없다는 압박감은 큰 혼돈을 야기했습니다. 경제가 안 좋아지면서 화폐는 가치를 잃어갔으며 이런 상황이 겹쳐지면서 소련의 경제는 점점 어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공산주의가 맞는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 시작하며 혼란이 찾아옵니다.
공산주의가 단기간에 고속성장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자본주의의 성장속도를 따라가기 힘들었습니다. 또한 미국과 끊임없는 군비경쟁을 지속했으며 외교상황에도 신경 써야 했으므로 소련은 재정적으로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1985년 혼란에 젖어있던 소련에 불을 지핀 사람, 소련 붕괴의 핵심 인물인 고르바초프가 대통령으로 선출됩니다. 그는 경제를 부흥하기 위한 여러 개혁, 개방 정책을 펼칩니다. 공산당의 비리와 부패를 청산하고 정치, 헌법, 사법, 외교 등 소련이 모든 체제를 갈아엎겠다는 파격적인 정책과 공산주의의 핵심인 공유재산 제도를 부정하고 노동자가 일한 만큼 임금을 지불해 생산력을 높이고자 하는 정책이었습니다.
또한 종교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며 이런 정책들로 소련 내의 개별적인 공화국을 존중하되 연방체제는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공산주의 사회에서 살던 사람들에게 갑자기 주어진 자유는 긍정적인 효과보다 부정적인 효과를 불러왔습니다.
이 정책은 갑작스러운 변화를 비판하는 보수파와 개혁이 느리다고 비판하는 급진파가 부딪히면서 지지받지 못했습니다.
급기야 소련 내의 공화국들은 자유와 독립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이렇게 소련의 구성국들 마저 하나씩 독립하기 시작하면서 소련은 진짜 마지막을 향해 달리게 됩니다.
그리고 개혁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보수파는 쿠데타를 일으키게 됩니다. 기울어가는 소련을 구하겠다는 명분으로 시작된 쿠데타였지만 대중들은 쿠데타를 지지해주지 않았으며 쿠데타를 옹호하는 사람은 국내, 국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쿠데타는 실패합니다.
이후 소련을 구성하는 주요 국가들이 소련 해제에 합의한 벨라베자 조약에 서명했고 러시아가 소련의 승계국가임을 유엔에게 승인받았습니다. 결국 초강대국이었던 소련은 1991년 12월 역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소련의 붕괴는 그야말로 세계의 충격이었으며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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