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는 반복되어서는 절대 안 될 비극적인 역사로 나치가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입니다. 1939년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이후 히틀러는 독일의 영토뿐만 아니라 전유럽에서 여태까지 인류가 저지른 최악의 범죄 중 하나를 일으킵니다. 바로 수백만 명의 유대인에 대한 학살, 홀로코스트입니다.
홀로코스트가 일어난 이유
이 말도 안 되는 홀로코스트가 당대에 가능했던 것은 순식간에 일어난 단기적 사건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점차 극단화되면서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6년 전인 1933년에 총리로 취임한 히틀러는 이미 당대 모든 사회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유대인에게 돌리고 있었습니다.
나치 집권하기 전에 독일은 거듭된 위기 상황에 봉착합니다.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후 민족적 자존심이 짓밟혔고 천문학적인 금액의 전쟁 배상금을 물게 됩니다. 또한 1920년대 말의 세계대공황으로 경제위기까지 닥치게 되면서 기업들은 줄줄이 도산하고 실직자들이 급증합니다. 이런 상황이 되자 독일인들의 불만과 불안감은 커져만 갔습니다.
이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나치당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독일 사회의 혼란을 틈타 게르만 민족 공동체의 우수성을 강조하면서 독일인들의 마음에 파고들었습니다.
그런 나치당은 우리가 전쟁으로 힘들어할 때 그 전쟁으로 이익을 본 건 유대인이라고 말하며 독일인들의 불안을 모두 유대인 탓으로 몰고 갔고 공동의 적으로 몰아갔습니다. 이렇게 유대인을 희생양으로 만든 전략은 나치당 집권의 큰 발판을 마련해 줍니다.
유대인을 희생양으로 만든 나치
유대인들에 대한 반감이 극심해진 독일인들은 유대인 서적을 불태우고 상점 또한 부수고 약탈하며 그들을 독일 사회에서 박멸해야 하는 존재로 인식하게 됩니다. 이어서 히틀러는 제도적인 차원에서의 유대인에 대한 탄압을 준비합니다. 공무원법을 제정해서 공무원들 중 유대인을 강제로 퇴직시키고 대학에서도 유대인 학자들을 몰아냈습니다.
이어서 유대인 판사와 검사들을 퇴직시켰고 이후 유대인 변호사들도 더 이상 활동을 할 수 없도록 금지시켰습니다. 독일의 대학들로 하여금 유대인이 전체 정원의 1.5%를 넘을 수 없도록 만들었고 유대인 상점 불매운동, 군복무에서도 제외시킵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며 불안감을 느낀 많은 유대인들이 히틀러 집권 첫해에 이미 독일을 떠나기 시작했는데 1933년에만 3만 7천여 명이 넘는 유대인들이 독일을 떠났습니다.
1935년 히틀러는 유대인과 독일인의 결혼이 법적으로 금지하는 등 유대인의 권리를 박탈하는 나치 법인 뉘른베르크법을 통해서 유대인에 대한 제도적 차별을 더욱 강화해 나갑니다. 심지어 유대인으로 확인된 이에 대해서는 독일 시민권이 인정되지 않기까지 했습니다.
뉘른베르크 법으로 위기감을 느낀 유대인들이 본격적으로 독일을 떠나기 시작하자 독일은 이들에게 제국 도피세 명목으로 전재산의 25%를 세금으로 부과하는데 1938년에는 제국 도피세를 통해 거둬들인 조세가 독일 국민 전체에게 부과된 소득세보다 많을 정도였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비극적인 역사
그리고 1942년 1월 베를린 인근의 반제에서 개최된 반제회의에서 나치 고위 관료들은 최종해결책이라는 이름으로 독일에 의해 점령된 지역의 유대인들을 폴란드 지역의 수용소로 강제이송한 후 집단학살할 계획을 세웁니다. 이제 독일이 점령한 지역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학살이 더욱 빠른 속도로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가장 악명 높았던 생지옥 현장인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폴란드와 동유럽 지역의 수용소로 보내졌습니다.
그곳에 도착한 유대인들은 의사에 의해서 검사를 받고 건강한 이들은 강제 노동을 해야 했으며 노인과 병자, 어린이들은 곧바로 일명 샤워실이라고 불리는 가스실로 향했습니다. 가스실로 향한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노동을 하기 전 샤워를 하기 위해 가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영문도 모른 채 이곳에 끌려온 유대인들에게 나치친위대는 샤워를 할 거니 옷을 다 벗으라고 명령한 후 좁은 공간에 몰아넣었습니다. 그들은 따뜻한 물이 나오기를 기다렸지만 샤워실을 가득 채운 것은 물이 아니라 맹독성 가스였습니다.
최단시간에 최대 살상을 목적을 만들어진 이 끔찍한 방법을 통해 수많은 유대인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사망한 시신들은 가스실 옆에 있는 소각장에서 불태워졌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나치의 반인륜적인 생체실험을 당해야 했습니다.
나치는 이 과정에서 유대인들 중 일부를 강제로 동원해 수용소에서 죽은 시체를 처리하고 잡무를 보조하도록해서강제수용소가 원활히 돌아가도록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대한 집단적인 학살을 통해 1945년까지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이 사망했다고 추정되고 있습니다. 독일과 폴란드 지역의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크로아티아, 그리스, 프랑스, 체코, 헝가리, 이탈리아,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세르비아 등 전유럽 지역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이 나치에 의해 학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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