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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대하여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 원인과 기간

by 드림별 2023. 3. 4.

제2차 세계대전은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일어난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피해를 안겨준 전쟁입니다.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후 히틀러가 등장하고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시작된 이 전쟁은 세계적 규모로 확대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빼앗고 피해를 준 전쟁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 원인과 기간

1918년 11월 제1차 세계대전을 끝으로 전쟁에서 패배한 독일은 엄청난 배상금을 끌어안게 됩니다. 배상금을 갚기 위해 돈을 무분별하게 찍어내기 시작했고 독일 국민들은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히틀러가 등장하는데 그는 독일인의 무너진 자존심을 회복시켜 주는 웅변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패배감에 찌들어있던 독일인들에게 자부심을 북돋으며 결국 수상이 됩니다.

 

독재 체제를 이룬 히틀러는 배상금은 물론 1차 대전에 대한 피해를 책임지는 약속인 베르사유 조약을 위반하고 독일이 중심이 되어 유럽을 재편하기 위해 군대를 재무장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독일은 폴란드가 1차 세계대전 때 점령한 독일의 영토 일부분을 다시 되찾고 싶었고 히틀러가 권력을 잡은 이후 구영토의 반환을 폴란드에 여러 차례 요구 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고 이것을 두고 외교적 분쟁을 빚은 끝에 히틀러는 군사적인 해결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만만한 게 아니었는데 당시 프랑스와 영국은 폴란드와 상호 방위조약으로 결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독일의 폴란드 침공은 당연히 영국과 프랑스의 참전을 불러오게 되고 독일은 1차 세계대전 때처럼 양측에서 숨통을 조여 오는 것을 막아야 하는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독일은 새로운 방안을 찾기 시작했고 폴란드의 우측에 위치한 소련과 비밀협상을 벌여 독일과 소련은 모스크바에서 서로 군사적 침략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인 독. 소 불가침조약을 맺게 됩니다. 그리고 폴란드를 점령하면 폴란드 영토를 나누어 독일과 소련이 나누어갖는데 합의합니다.

 

1939년 9월 1일 독일은 선전포고도 없이 폴란드를 침공하였고 소련은 독일과 합의에 따라 폴란드를 침공합니다. 그리고 당시 폴란드와 동맹관계에 있던 영국과 프랑스도 독일에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은 시작됩니다.

 

독일군은 소련군의 도움과 함께 신속한 기동력과 기습으로 폴란드를 전쟁초기에 끝내기 위한 작전을 펼치는데 이 전략은 독일이 구 프로이센 시절부터 계속해서 펼쳤던 전략이었습니다.

 

독일과 소련은 강력했으며 불과 3주 만에 수적으로 열세였던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를 함락합니다. 그리고 폴란드의 동맹국이었던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공격할 부대를 제대로 모을 시간도 없이 폴란드가 항복을 선언해 버립니다. 

 

히틀러는 가장 위험한 적은 영국이며 그들을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프랑스를 먼저 꺾어야만 한다고 말했고 곧바로 영국과 프랑스에 맞선 작전을 세운 독일은 먼저 가까이에 있는 프랑스에 대한 공격을 준비하였는데 프랑스는  10년 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방어가 최선의 전략이라고 인식했고 거액의 비용을 들여 국경을 방어하는 대규모 요새를 만듭니다.

 

이 요새는 독립적으로 작전을 펼칠 수 있는 수백 개의 방어시설과 벙커가 촘촘히 설치되어 있으며 마지노 장군의 이름을 따 마지노 선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프랑스 침공을 준비하던 독일은 이 강력한 요새를 뚫기는 불가능하다고 여겼고 이 마지노선을 우회해 당시 중립을 선언했던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를 강제로 점령하고 프랑스의 아르덴 숲으로 돌파하기 시작합니다.

 

또한 예전부터 독일과 상호 협력 조약을 맺고 있었던 이탈리아는 독일을 도와 프랑스의 남부를 침공합니다. 서부전선이 완전히 붕괴되어 영국과 프랑스는 전면패배의 위기에 봉착했고 후퇴를 거듭해 덩케르크 해안에서 대규모 탈출작전을 시도합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해상 탈출작전을 감행했고 독일군에게 장비와 물자를 넘기지 않고 성곡적으로 철수합니다. 독일군은 파리를 함락하고 프랑스 점령을 마치게 됩니다. 프랑스를 패망시킨 독일은 프랑스의 반은 직접 지배하고 나머지 반은 프랑스의 친독일 정권을 세워 간접 지배하는 형태를 취합니다.

 

프랑스가 정복당하면서 독일은 곧바로 영국으로 방향을 틀었고 영국은 독일과의 힘겨운 전쟁을 이어갑니다. 하지만 영국은 독일군의 대규모 공격을 방어하는 데 성공합니다.

 

처음으로 패배를 맛본 히틀러는 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전쟁물자 확보가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동맹이었던 소련의 풍부한 석유와 자원에 눈이 멀어 소련을 배신하기로 마음먹습니다. 히틀러는 영국이 본토의 피해를 복구하는 동안 그리스를 점령 후 소련과의 불가침조약을 깨고 소련을 침략합니다.

 

1941년 6월 6일에 독일이 동맹국을 비롯한 군사 300만 명을 동원해 바르바로사 작전을 개시해 소련을 공격합니다. 바르바로사 작전은 소련의 중심부로 가기 위해 1500km에 이르는 전선에 최대규모의 침공군을 집결시켜 셋방면을 나누어 침투하겠다는 작전이었습니다. 불시에 침입을 받은 소련은 영국과 즉시 군사동맹을 맺었지만 후퇴를 거듭해 모스크바까지 불과 30km를 남겨둔 상황까지 가게 됩니다. 

 

이 당시 아시아에서 일본은 중국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이것이 만주사변으로 일어난 중일전쟁입니다. 당시 일본은 경제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식민지를 더욱 확보하려 침략을 하게 되는데 자원이 풍부한 중국의 만주를 침략함으로써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중일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전쟁에 필요한 석유와 목재가 더욱더 필요했고 일본은 동남아 지역의 인도차이나 반도를 노리게 됩니다. 당시 인도차이나반도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였는데 유럽 전선에서 전쟁을 벌이는 동안 식민지 관리가 소홀해졌기 때문에 쉽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모습을 지켜보던 미국과 유럽국가들은 일본에 석유와 물적자원 수출을 금지시켰고 장기전에 물자가 차단된 일본은 치명타를 입고 화가 났으며 무력으로 미국의 하와이와 인도차이나반도에 있는 동남아를 침공하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그렇게 1941년 12월 7일 일본은 선전포고 없이 하와이의 진주만을 목표로 미국 전진 기지들을 습격하며 본격적인 미국과의 태평양 전쟁이 시작됩니다. 진주만 폭격 후 일본은 무서운 기세로 동남아 지역을 확보하고 당시 동맹이었던 독일과 이탈리아도 일본의 태평양 전쟁에 지원을 나서게 됩니다.

 

1942년 1월 미국, 영국, 소련 등 26개 국가가 워싱턴에서 연합국 선언을 하였고 미리 전쟁을 준비해 온 독일과 일본 등이 전쟁 초기에는 유럽전선과 태평양전선에서 계속 승리하였지만 1942년 6월 미국이 전쟁의 판세를 뒤집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아시아 전선에서 일본과 태평양전쟁 중인 미군에는 블랙챔버라고 불리는 암호해독팀이 있었는데 이들이 일본군의 무전에서 미드웨이 섬이라는 암호를 해독한 것입니다.

 

그렇게 일본의 작전암호를 파악한 미국은 일본보다 한발 더 앞서서 전투를 준비할 수 있었고 미드웨이 섬 인근에서 탁월한 전투로 일본을 격파하여 전쟁이 주도권을 잡기 시작합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유럽전선의 독일은 보급로가 멀어지고 제대로 된 보급이 불가능해져 갔습니다.

 

 

그리고 영하 40도의 혹독한 추위에 의해 동상으로 사망하는 군인들이 대거 발생하기 시작하며 1943년 1월 전투에서 소련이 독일군을 포위하고 궤멸에 가까운 피해는 입히게 됩니다. 이 전투를 기점으로 소련군의 반격이 이루어집니다.

 

또 이 무렵 미국과 영국의 연합국은 북아프리카에 상륙하여 이탈리아를 공격했고 이에 파시스트 정부의 무솔리니는 무너지며 연합군에 항복하게 됩니다. 승세를 잡은 연합군은 1944년 6월 아이젠하워 장군의 지휘 아래 인류역사상 최대 규모의 작전을 펼쳤고 프랑스의 노르망디 지역에 3주 동안 약 150만 명에 달하는 병력을 상륙시켜 독일군을 무찌르고 파리를 탈환하여 프랑스를 해방시킵니다.

 

전쟁의 승기는 연합군이 잡았으며 잠깐의 재정비를 마친 히틀러는 모든 것을 건 도박을 하게 됩니다. 남아있는 전차와 병력자원을 대거 모아 아르덴 대공세(벌지전투)를 계획한 것입니다. 1944년 12월 16일 독일군은 파죽지세로 밀고 나갔지만 불과 일주일 만에 전세가 역전됩니다. 연합군이 전투에 빠르게 대응하면서 벌지전투는 패배로 끝나게 됩니다.

 

1945년 4월 22일 소련군이 독일의 수도 베를린까지 점령하면서 히틀러는 패배하게 됩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히틀러는 베를린 지하 벙커에서 결혼 후 바로 다음날 둘 다 자살을 하게 됩니다.

 

이로써 유럽에서의 공식적인 전쟁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그렇게 독일이 항복을 선언하고 일본만 남게 됩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 영국, 소련은 포츠담 선언으로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며 경고를 했지만 일본은 거절합니다.

 

마지막 경고에도 버티던 일본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떨어지면서 결국 항복하게 됩니다. 그리고 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 민주주의와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주의로 나누어졌고 서로 대립하며 긴장상태가 지속되는 냉전체제로 돌입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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